두리안
구인숙
두리안
이맘쯤이면
동네사거리 저 한 구석에
노란 고슴도치들을 빼곡히 태운 낡은 트럭이
빨강 매직글이 씌어 진 팻말을 걸고
한동안 상주한다
몇 십년을 묵힌 듯한 고약한 냄새
가시 돋힌 껍질밑에서
군데군데 입 벌린 고슴도치들이
간택 받을 손을 기다리는 양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뾰족하고 긴 칼로
쓱쓱 조각을 내는 트럭주인
햇볕에 그을린 시꺼먼 두 손으로
곱게 발라 낸 고슴도치의 심장뭉치에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버티다 곪아 터져가는
살아 있는 심장들의 애타는 이야기를 담아 넣는다
하늘을 찌르는 냄새의 파장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취두부를 대하듯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저만치 서서 그 맛만 뒤적이던 나
오늘은 처음으로
속이 울렁이는 유혹을 느낀다
투명한 플라스틱용기 속에서
핏빛이 아닌 노랗게 익은 폐처럼
알몸으로 서로 맞대고 있는 고슴도치의 노란 심장
토할 것같은 저속한 향기가
나 주위를 맴도는 유령꽃이 되여
나를 휘청거리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그 맛에
오늘은
나도 매료되고 싶다
내 몸이 악취로 샤워를 한다 하더라도
오늘은
꼭 저 맛에 빠져보련다
냉동실 신세를 지고
한참동안 찬기운을 빨아드린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노란 고슴도치
말랑말랑하고
고소하고 달달하고
쫀득한 아이스크림같다
이걸 어쩌나
퀴퀴하다고 코로 밀어냈던 그 세월
요염한 티 하나 없이
가슴 깊게 꽂아주는 그 진맛에
한순간에 항복해버렸다
그동안 싫다고 외면했던 수많은 사연들
멀리 했던 두리안처럼
그저 그냥 스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