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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분의 수필마당-비오는 날이 장날이다
2020년06월23일 17:25   조회수:960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비오는 날이 장날이다

   김영분


비오는 날이 장날이다

 

비가 온다.

봄비가 주룩주룩 쉬지 않고 내린다. 메말랐던 도로변 록화지대도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가벼운 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쉽게 몸서리를 치던 먼지들은 떼거지를 지어 정처없이 도로 하수관으로 흘러들어간다.

제법 당찬 비방울들이 건물 주차장에 주차되여 있는 주인 없는 자동차들을 두드린다. 차 지붕 우에는 잔잔한 비방울들이 다시 튀여오르고 차창은 비련의 소녀 마냥 구슬픈 눈물을 마구 흘러내린다.

위챗 모멘트에는 벌써 지지미와 막걸리가 곁들어진 따뜻한 온돌방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져 올라있다. 양고기식당을 하는 사장님의 고기를 삶느라 하얀 김을 내뿜는 부뚜막도 버젓이 등장했다. 비소리가 투닥거리는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위챗 모멘트를  검열하고 있으니 뜨끈뜨끈한 무언가를 위속에 집어넣고 싶어진다.

비가 온다.

몸은 사무책상에 기댔어도 일할 생각은 비방울을 따라  땅밑으로 잦아든다.무엇이라도 해야겠는데 정작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무언의 심란이 슬슬 마음 한구석에 돗자리를 펴고 있다. 리성의 뇌는 잠시 쉬겠노라 파업단계에 들어서고 착잡한 감성의 돌기들이 봄에 톡톡 터지는 꽃망울들이 되여 당장 바깥세상으로 터져나갈 태세를 취하고 있다.

멘탈은 어느새 주차장에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자동차께로 잰걸음을 날린다. 타이어가 굴러가는 어딘가로 애잔해 하는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 마음속의 채워지지 않는 어떠한 것들을 털어내며 슬픈 사연들을 따뜻한 커피 한잔에 풀어 나눠 마시고 싶은 충동이 봄비에 머리를 쳐드는 새싹처럼 촐싹거린다.

이때, 세차게 떨어지는 비방울을 이고 까만 작업복을 입은 핸드캐리 업체 직원이 무거운 박스를 부여잡고 사무실에 성큼 들어섰다. 배달물이 비물에 파손될가봐 옷섶을 젖혀 감싸고 까치발로 뛰는 것이 꼭 마치 아이를 안은 것 같았다.

움츠린 어깨와 달리 비를 피해 뛰는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다. 무언가에 쫓기우는 듯 흥분에 떠는 숨소리가 괴괴하던 사무실 전체에 퍼진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 묻어나는 약간은 들뜬 얼굴이다. 찬 공기에 파랗게 그슬린 코 끝에 땀방울인지 비물인지 데롱데롱 메달려 승리했노라를 뽐내고 있다.

핸드케리 업체 직원은 사무실에 들어서서는 미처 갈 곳이 파악 안되여 잠시 머리 우에 머물러 있는 비방울들을 툭툭 털고 걱정거리가 있는 듯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업무원 테이블로 걸어간다.행여나 비방울에 테이블이 어지러워질가봐  업무원과 한메터 간격을 두고 업무인계를 하고 있다.

갑자기 업무원이 야호를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원래는 예상치 못한 비로 인해 지연되였다고 통보를 받은 물품이 제 시간에 배달되였던 것이다. 시름이 얼켰던 그녀의 얼굴은 삽시에 얼었던 매화가 피여나 듯이 화사하게 핀다. 델리바리를 맞출수 있게 되여서 이번 달 업무를 순리롭게 완성하고 승진표까지 거머쥔 것이다.

평소보다 몇배는 더 즐거운 모양이다. 연신 배달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문가 까지 바래다 준다. 열성적인 배달원은 오늘 배달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매우 뿌듯해한다.

배달원은 문을 나서며 씨익 웃고는 또 비속으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씩씩하게 뛰여든다. 까치발을 하면서. 두 손은 머리를 감싸고 말이다. 그래도 비방울은 사정없이 그의 넙적한 등짝에 내리꽂힌다. 행복을 배달한다고 확신하는 까치발이 잽싸게 떠나간 자리에는 하얗게 물보라가 살짝 살짝 인다.

우산 좀 쓰고 다니지 하면서 불현듯 관심해주고 싶은 마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핀잔이 머리속을 파고 들었다. 그 덕분에 용케도 아련히 몰려오던 커피 비위는 선잠을 깬 아이가 눈을 비비 듯 부시시 흩어진다.  

비가 온다.

딩동하고 문자가 뜬다.

한국 지방에서 노가다일을 하고 있는 오빠다.

“오늘 여기는 큰 비가 내리고 있단다. 그래서 어쩌다가 쉬게 되였다. 쉬는 날에 가족들이랑 맛있는 거 해먹으려 했는데 오늘 웬일이냐. 시장이 장날이다. 모처럼 우산 쓰고 장을 푸짐히  봐서 지금 추어탕 보글보글 끓이고 있다. 참 타이밍이 잘 맞춰진 좋은 날이다.”

문자 밑에는 어김없이 사진 한장이 추가 되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추어탕이 가스불 우에서 보글거리고 있다. 기분이 지화자둥둥인가보다.

내 눈앞에는 사시장철 시멘트와 철근 사이를 전전하는 커쿨진 오빠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독한 해빛에 그을려 구리빛을 얼굴, 그리고 얼굴보다 톤이 더 어두운 두터운 목, 항상 무거운 집을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탄탄한 두 팔, 두 손은 알이 박혀 투박하기로 길가에 옹이 박힌 나무를 흡사하게 했다.

오빠는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인 집을 짓는 사람이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의 집을 짓느라 정작 자신의 집은 비 올 때만 느긋하게 오래 머문다. 일년 사시절 건설현장에서 땡볕세례를 받는 오빠는 비오는 날이 아주 기대되고 고마운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다 일을 나갈 수 없기에 혼자만 뒤떨어진다는 조바심이 없이 편안히 집에서 쉴 수 있어서 좋은 모양이다.

집시처럼 떠도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여도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이고 또 쉬는 날이 면바로 장날이여서 기분이 째지게 좋은 오빠가 가슴 한가득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내심으로 우러러 나오는 그 즐거움이 비소리를 따라 스멀스멀 나에게로 전달되였다.

비가 온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이 장날이다. 급한 물건을 배달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배로 받은  배달원도, 지연되였다고 생각한 물품을 제때에 배달받아 승진표를 거머쥔  업무원도 덤으로 행복을 선물 받아 행복해한다.비오는 날을 빌어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눠먹는 오빠는 또 얼마나 더 행복했을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의례적으로 불행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태풍이 휩쓸고 지난 과일농장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고 명명해 대합입시생들에게 판매하여 큰 수익을 얻은 사례도 있다. 이 사례는 작은 일본을 맴돌다가 전 세계를 활보하며 넘어진 자리에서 반드시 다시 일어 설 좋은 방법과 기회가 숨어 있다는 도리를 알려주고 있다.

비가 온다.

주록주룩 내리는 비소리가 다시 고막을 자극한다. 그 소리에 이젠 몽롱하게 현실을 회피하고자 커피타령이나 하던 정신줄은 다림질을 한 바지처럼 곧바르게 펴졌다. 들끓던 커피 감성은 오래된 맥주처럼 차분히 가라앉았다.

글이 나오지 않아서 괴롭다고 호소하던 나,애 문제로 선생님 호출이 있었다고 속상해 하던 나, 운영하는 회사에 정부의 관심이 지나치게 많이 쏠린다고 불평하던 나,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못하냐고 자괴를 하던 나, 심지어 세상을 다 알은 듯 무관심으로 주위를 대했던 나, 참으로 부끄럽게 다가왔다. 다리 잃은 사람 앞에서 신발이 없다고 투정하는 엄살쟁이처럼 보였다.

나에게 어두웠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그늘 뿐이 아니였다. 그늘안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쉬면서 성장했던 것이다.그 덕에 글 잘 쓰려고 항상 좋은 글귀들을 부지런히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고 애와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청소년상담사가 되였다.회사관계부문을 많이 접촉한 관계로 의외로 혜택정책을 많이 알게 되였고 주위에 무관심한 듯한 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보따리에 싼 이야기처럼 풀어놓고 보면 많고도 많은데 쪽집게처럼 서글픈 기억만 고집하려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그게 다 부지런히 제 갈 길 가는 비의 탓인양 책임 전가를 하려고 하고 있지 않았는가. 비와 커피가 무슨 죄가 있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죽지 말아야겠다. 비오는 날이 장날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 비가 그치면 불평불만에 젖었던 내 마음을 해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리우고 기쁜 마음으로 커피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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