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에게(외1수)
권연이
붓꽃에게
네가 지금
만발하여 있는 구석진 그 자리
지난 가을
내가 한없이 울었던 자리더구나
혹
내가 흘린 눈물 먹고 피어나
그래서 너도
이슬 머금고 피어난 건 아닌지
그때 그날,
서러워도 서러워도 아닌 척 할 걸 그랬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함초롬이 자주빛 피워 올리는 너
한잎한잎 피워
한송이 되더니
한송이한송이 지천을 물들이는구나
그렇게 보라빛의 위로가 되어준 너를
나는 여태
나는 여태
너의 이름도 몰랐구나
(연변일보 2019.8)
잡지 않기로 했다네
사랑한다고
숨막히도록 껴안고
죽어도 놓지 않을 듯 하더니
한 줄기 새벽 찬비에
무더위도 사랑도 질식해버리고 말았네
빈 허울만 남겨놓고
여름은 그렇게 씩어버렸네
금세 돌아서서 떠날 차비를 하고 있네
나는 잡지 않기로 했다네
기어이 떠나려는 여름을 잡지 않기로 했다네
저 산너머에서
까치발하고 서성이는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 올
가을이 기다린다네
나는 가을을 부를 거네
나는 가을로 갈 거네
(흑룡강신문 2018.9)